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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식물

여로 뿌리 속에 숨은 강심 독성 식물

by 씨티보리 2025. 6. 28.

들꽃처럼 피지만 약초도, 나물도 아닌 여로의 정체

봄과 초여름, 깊은 산길이나 풀밭에서 키가 크고 잎이 넓은 식물이 부드러운 연둣빛으로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땅에서 돋은 잎만 보면 마치 산나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두릅이나 원추리로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식물은 결코 채취해서는 안 되는 강력한 독성을 가진 식물, 여로다. 한국에서는 주로 노랑여로참여로가 자생하며, 전국의 중고산지에 널리 분포한다. 여로는 1~2m 가까이 자라며, 굵은 뿌리줄기를 중심으로 잎이 번갈아가며 나고, 여름이 되면 흰색 또는 노란빛의 작은 꽃들이 줄기 끝에 밀집해 핀다. 그러나 꽃이 피기 전 여로의 어린잎은 참나물이나 곰취와 헷갈릴 만큼 유사해, 매년 봄철 산나물 채취 시즌에 중독 사고가 반복되는 대표 식물로 지목된다. 특히 산나물 애호가나 등산객들이 식별법을 잘 알지 못할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여로의 독성은 단순한 위장장애가 아니라 심장, 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강심성 독성을 포함하고 있어, 그 외양과는 달리 매우 위험한 식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여로는 식물 생태계에서 특별한 경계의 대상이며, 자연 속에서 마주할 때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여로 뿌리 속에 숨은 강심 독성 식물
출처: 국립생물자원관

 

여로의 강한 독성 성분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

여로의 주요 독성 성분은 베라트린, 제르베린, 시클로파민 등으로 분류되는 스테로이드성 알칼로이드이다. 이들 물질은 모두 심장박동, 혈압, 중추신경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며, 체내에 소량만 들어가도 신체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베라트린은 심근을 자극해 서맥(느린 맥박), 저혈압, 호흡곤란, 심부전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사람이 여로의 뿌리나 잎을 섭취했을 경우 나타나는 초기 증상은 다음과 같다: 입과 혀의 따가움, 타는 듯한 느낌 구토, 복통, 심한 설사 어지럼증, 떨림, 근육 경련 심장박동 이상, 혈압 급강하 심한 경우 혼수, 호흡 정지, 사망 이처럼 여로는 단순한 설사 유발 식물이 아니라, 심혈관계에 급성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치명적 독성 식물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끓이거나 말려도 독성 성분이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민간에서는 "삶으면 독이 빠진다"고 믿고 섭취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잘못된 상식이며 실제로 중독 사고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더불어 여로의 독성은 동물에게도 적용된다. 가축이 여로를 먹었을 경우에도 경련, 타액 분비, 호흡 이상이 나타나며, 반복적으로 섭취할 경우 폐사에 이를 수 있다. 이 때문에 과거 농가에서는 여로가 자라는 지역을 ‘금초지’로 관리하거나, 뿌리를 아예 제거하기도 했다.

 

약재인가 독초인가 – 여로의 역사적 사용과 그 그림자

여로는 단지 독성 식물로만 알려진 것이 아니라, 전통 한의학과 고대 약전에 이름을 올린 약재이기도 하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 등 동아시아 의서에는 여로를 해독제, 살충제, 거담제로 제한적 활용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위독을 제거하고 구충하며, 농을 뽑는다’는 식의 표현이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극소량, 전문가에 의한 복약 전제로 기술된 것으로, 민간에서 임의 사용하기엔 매우 위험하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여로의 뿌리를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벼룩, 이, 벼룩벌레 등을 퇴치하는 살충제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로는 의학과 생활의 경계에서 유용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품은 식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여로의 독성 강도와 위험성이 더욱 명확히 밝혀졌기 때문에, 공식 약전에서도 제외되었거나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다. 현대에 이르러 여로는 일부 ‘자연주의 건강법’을 내세우는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잘못 소개되기도 한다. "여로즙이 만병통치", "삶아 마시면 혈압에 좋다"는 등의 주장들은 과학적 근거 없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실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로는 전통 약초라기보다는 "극히 제한된 조건에서만 사용 가능한 독성 약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산나물과 혼동 주의 – 여로 중독을 막기 위한 실천 지침

여로 중독 사고의 대부분은 산나물과의 혼동에서 비롯된다. 봄철 등산이나 나물 채취 시, 여로의 넓은 잎을 두릅, 고사리, 명이나물 등과 혼동해 뜯어가는 사례가 많으며, 특히 경험이 적은 채취자일수록 그 위험이 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식별법 교육과 경고 안내판 설치, 안전한 채취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 여로 식별 팁: 잎맥이 매우 뚜렷하고 서로 겹치듯 나있음 줄기가 굵고 털이 없음 잎 끝이 둥글고 광택이 있으며, 포개진 형태 또한 식재 시에도 여로는 절대 관상용이나 정원용 식물로 키워서는 안 된다. 독성 식물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심는 경우, 반려동물이나 아이들이 접근할 수 있어 위험하다. 지자체 차원에서 여로 자생지에 대한 경고 안내, 출입 제한, 표지판 설치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여로는 겉모습으로만 보면 건강하고 순한 식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뿌리와 잎, 꽃 모두가 생명을 위협하는 강력한 성분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자연의 식물들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통해, 위험을 피하고 생태계와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다. 여로는 그 점을 경고하는 자연의 신호이자, 경계심을 일깨우는 존재다.